*스위스는 작은 나라다.
국토면적 41272 ㎢ 로 136위, 인구는 800 만명으로 96위 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99720 ㎢ 로 109위 4890만명으로 26위다.
국토면적으로 우리가 2배 많고 인구수로는 6배 많다.
*국토 국민 모두 작은 나라이지만 국가경쟁력, 인적자원 경쟁력, 관광경쟁력 모두 1위에다 국내 우수인력 활용도세계 2위로
거의 모든부분에서 최상위를 유지하는 나라가 스위스다.
* 프랑스 대혁명 당시 1792년 8월 10일 사건 때 튈르리 궁전을 사수하다 전멸한 스위스 용병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었다.
이 사건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목숨까지 희생해가면서 약속을 지키는 스위스 용병의 당당한 모습을 유럽 전역에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마크 트웨인은 이 조각상을 "세계에서 가장 감동적인 작품"이라고 극찬하였다.
-지리적, 경제적으로 빈곤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가진 스위스인들이 가족과 이웃 그리고 국민을 위해 시작된 불굴의
스위스 용병의 역사는 스위스를 이해하는 바탕이 된다.
* 스위스용병
[유럽에서 가장 악명높고 한 동안 가장 인기 있었던 용병은 스위스 인들이었다.
14세기 도끼창 (스위스 산악지대 사람들의 무기는 그들을 유명하게 만든 장창이 아니라 단순한 도끼, 즉 창과 결합한 2미터40 정도 길이의 도끼창이었다.) 과 장창으로 합스부르크 제국으로부터 연방주들의 독립을 쟁취했던 스위스인들의
열악한 경제사정으로 인해 돈을 지불하기만 하면 누구를 위해서든 자신들의 군사기술을 빌려줘야만했다.
16세기 이들을 고용한것은 주로 프랑스인들이었다.]
"스위스 용병들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전쟁은 국가적 산업이었다." [유럽사 속의 전쟁] 마이클 하워드
말을 탄 기사는 승리보다 개인의 명예에 더 괌심을 두었기에 자기자신을 위해 돌격했다.
그러나 스위스 용병들은 서로뭉쳐 침투 불가능한 거대한 고슴도치처럼 방어하는 기술을 체득했으며
더 나아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도 배웠다.
이미 14세기 초반무렵부터 스위스 용병들은 고도로 전문화되어 있었다.
그들은 백병전을 위해 장검과 도끼창으로 무장한 이들을 포함하는 거대한 창병 방진을 구축했다.
300 이라는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이 장면이 잘 떠오를것이다.
스파르타의 군인들의 눈으로 본다면 14세기 스위스 용병들은 그들의 방어진을 충실히 그리고 완벽하게 완성한 군인들로
자랑스러워 했을것이다.
* 스위스 용병의 용맹함과 신의는 유럽 여러나라의 신뢰를 쌓았다.
그 신뢰와 전통은 오늘날 까지 교황의 경비병은 모두 스위스인들이라는 모습으로 잘 나타나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작고 가난한 나라였던 스위스가 오늘날 세계최고의 나라가 되기 까지에는
목숨을 바쳐서 약속을 지키는 신뢰를 바탕으로 성장하였다는것을 우리는 기억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