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베이비’ 탄생 들썩…영국 왕실은 어떤 곳 |
독일·그리스계 섞인 다국적 혈통… 왕족은 공식적 姓 없어 |
영국 왕실에 새로운 스타가 탄생했다. 윌리엄 왕세손과 평민 출신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빈 사이에서 태어난 ‘로열 베이비’다. 영국 왕실에 대한 국민들의 선호도와 국왕제에 대한 지지도가 올라가는 등 벌써부터 ‘로열 베이비 효과’가 만만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영국 왕실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본다.
1. 로열베이비는 누구인가
이름은 조지 알렉산더 루이스. 지난 22일 영국 런던 세인트메리 병원에서 3.79㎏의 몸무게로 태어났다. 친증조할머니는 여왕 엘리자베스 2세, 할아버지는 찰스 왕세자, 아버지는 윌리엄 왕세손이다. 공식명칭은 아버지(케임브리지공)의 작위를 따라 ‘케임브리지 조지 왕자(Prince George of Cambridge)’다. 현 영국 왕조인 윈저 왕조의 7번째 국왕에 즉위하게 되면, 영국 및 영연방과 약 10억 달러(약 1조1000억 원)에 이르는 왕실 재산을 물려받을 예정이다.
2. 왕위 계승 순위는
조지 왕자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왕위 계승 서열 3위에 올랐다. 서열 1위는 찰스 왕세자, 2위는 윌리엄 왕세손이다. 3위였던 해리 왕자는 4위로 밀려났다. 윌리엄 왕세손 부부 사이에서 또 다른 왕자가 태어날 경우 해리 왕자의 순위는 다시 처지게 된다. 현재 5위는 여왕의 둘째 아들 앤드루 왕자, 6위와 7위는 앤드루 왕자의 두 딸인 베아트리체 공주와 유지니 공주, 8위는 여왕의 셋째 아들 에드워드 왕자, 9위와 10위는 에드워드 왕자의 아들과 딸인 제임스와 루이스다.
3. 영국 왕조의 변천사
영국은 고대 로마통치시대와 앵글로색슨 왕조(9∼10세기)를 거쳐 노르만 왕조의 ‘정복왕 윌리엄 1세(1028∼1087년)’에 와서 잉글랜드 통합 왕권의 기반을 이룩했다. 이후 플란타지네트 왕조로 중세시대를 마감한 후 근세에 들어와 랭카스터 요크, 튜더, 스튜어트, 하노버 왕조를 거쳐 현재까지 윈저 왕조가 이어지고 있다. 윈저 왕조를 연 국왕은 조지 5세다. 조지 5세는 빅토리아 여왕이 독일 중소 귀족가문인 작센-코부르크 고타 출신인 사촌 알버트공과 결혼해 낳은 에드워드 7세의 아들이다. 따라서 에드워드 7세와 조지 5세는 혈통상 독일계다. 가문의 변천을 중심으로 영국 왕조 역사를 엄격하게 분류하면 빅토리아 여왕은 하노버 왕조의 마지막 국왕이고, 에드워드 7세와 조지 5세는 작센-코부르크 고타 왕가의 국왕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 영국에서 반독일 감정이 거세지자 조지 5세는 왕가의 이름을 작센-코부르크 고타에서 윈저로 개명했다. 그는 같은 해 7월 반포한 어명에서 “빅토리아 여왕의 모든 남자 후예는 윈저 왕가의 일원이 될 자격을 얻는다”고 규정했다.
4. 엘리자베스 2세 혈통은
영국을 비롯해 유럽 왕가의 혈통은 워낙 복잡하게 섞여 있어 구분하는 것이 사실상 별 의미가 없다. 가장 가까운 선조만 놓고 볼 때 여왕 가족은 독일과 그리스계 영국 혈통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지적했듯이 빅토리아 여왕이 독일인 알버트와 결혼했고, 엘리자베스 2세는 그리스와 덴마크, 노르웨이의 왕가인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 왕가의 필립과 결혼했다. 필립공의 할아버지는 그리스 국왕 게오르기오스 1세, 아버지는 그의 넷째 아들인 안드레아스 왕자다. 필립은 1947년 사촌인 엘리자베스 공주와 결혼한 후 종교를 그리스 정교에서 성공회로 바꾸는 한편 외가 성인 바텐베르크를 영어식으로 바꾼 마운트배튼을 자신의 성으로 택했다.
5. 왕실 가족의 성은
영국 왕실 가족의 이름은 롤모델로 삼고자 하는 선대 국왕이나 가까운 가족의 이름 서너 개를 섞는 것이 관례다. 엘리자베스 2세의 경우 정식 이름은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고, 찰스 왕세자의 이름은 찰스 필립 아서 조지다. 윌리엄 왕세손의 이름도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스다. 이름과 작위가 워낙 길기 때문에, 보통 첫 번째 이름만 부른다. 하지만 첫 번째 이름이 반드시 국왕의 이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조지 6세의 경우 이름이 앨버트 프레데릭 아서 조지지만, 1936년 형 에드워드 8세의 갑작스러운 퇴위로 즉위하게 되자 네 번째 이름인 조지를 자신의 왕위 이름으로 선택했다. 찰스 왕세자 역시 네 번째 이름이 조지인데,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조지 7세가 될 가능성이 있다.
영국 왕실 공식사이트(http://www.royal.gov.uk)에 따르면, 왕족은 성을 사용하지 않는다. 조지 5세가 1917년 윈저 왕조를 선포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영국 왕족에게는 공식적인 성이 없었다. 유럽 국왕과 왕족들은 통치 국가 또는 영지의 이름을 성으로 사용하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이다. 모든 공식문서에도 첫 번째 이름만 서명한다. 굳이 필요하다면, 왕조의 이름이나 아버지 가문의 이름을 성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이 두 가지는 일치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지난 1952년과 1960년 “나와 내 아이들이 윈저 왕가의 일족으로 명명되어 알려지고, 결혼한 내 후손들과 그들의 후손들 역시 성을 윈저로 할 것을 명령한다”고 공식선언했다. 또 ‘전하(His/Her Royal Highness)’라는 경칭과 작위를 가지지 않은 후손의 경우 남편의 성과 영국 왕조의 이름을 합친 ‘마운트배튼-윈저(Mountbatten-Windsor)’로 할 것을 명령했다.
6. 로열베이비 경제효과는
세계 소매·유통 시장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리테일 리서치 센터는 ‘로열 베이비’가 7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9주 동안 2억4300만 파운드(약 4158억 원)의 소매 판매를 증가시킬 것이란 전망을 최근 내놓았다. 각종 축제 행사 비용으로 8700만 파운드, 기념품 판매 8000만 파운드, 책과 DVD 판매 7600만 파운드의 창출효과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브랜드 평가 컨설팅 업체인 브랜드 파이낸스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로열 베이비가 가져올 경기부양 효과가 총 8억 달러(약 9000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베이비노믹스’란 신조어까지 나왔다. 하지만 과도하게 낙관적인 전망이란 분석도 많다. 지난 23일 경제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2008년 뉴욕발 경제위기를 전망하지 못했던 경제학자들의 무능을 지적하면서, 로열 베이비 경제 효과 분석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꼬집었다. 유아용품 소비가 증가한다 해도 다른 소비를 잠식할 테고, 샴페인이나 기념품 소비가 늘어봤자 대체로 수입산이어서 남 좋은 일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2억4300만 파운드라는 수치도 거시경제 차원에서는 보잘 것 없는 규모여서, 지난 3개월간 영국 내 소매 판매 870억 파운드를 기준으로 할 때 0.3%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소비가 순증하고, 소비자들이 영국산만 구매한다 해도 국내총생산(GDP)을 분기당 0.06% 늘릴 정도라고 FT는 분석했다.
7. 개정된 왕위계승법은
영국 왕실은 지난 수백 년간 국왕에게 아들이나 친손자가 없을 경우 딸이 왕위를 계승하도록 해왔다. 메리 여왕과 엘리자베스 1세, 엘리자베스 2세 등이 대표적인 여왕들이다. 하지만 지난 2011년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정부는 성별에 관계없이 국왕의 첫 번째 자녀가 왕위계승을 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하겠다고 공식 발표했으며, 같은 해 영연방 16개국 정상회의에서 이 개정안은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핵심내용은 첫째 국왕의 왕위는 첫 번째 자녀에게 계승된다, 둘째 2011년 10월 이전 출생 국왕 자녀에게는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셋째 국왕의 가톨릭 교도와의 결혼금지를 폐지한다 등이다. 이 개정안은 2012년 영국 상·하원을 통과했고, 이듬해 4월 25일 왕실의 동의를 얻어 정식으로 공표됐다. 이에 따라 2011년 10월 이후 태어나는 영국 왕손은 성별 구분 없이 왕위를 계승하고, 가톨릭 교도와도 결혼할 수 있게 됐다. 만약 가톨릭 교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왕손이 가톨릭 신자가 된다면, 성공회를 국교로 하는 영국에서 가톨릭 교도 국왕이 탄생될 수도 있다.
8. 다른 왕정국가의 계승은
전세계 196개국 가운데 22%에 달하는 44개국에 영국처럼 왕이 존재한다. 유럽의 주요 왕실 가운데 남성 우선 왕위계승 원칙을 지키고 있는 왕실은 스페인·덴마크·모나코 등이 있다. 반면, 스웨덴·벨기에·노르웨이·네덜란드 등은 성별에 관계없이 첫째가 왕위를 계승하도록 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부탄, 브루나이, 일본, 캄보디아, 태국, 말레이시아 등이 왕정을 유지하고 있으며, 유럽과 달리 여성은 왕위를 잇지 못하게 돼 있어 여왕이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일본의 경우 아키히토(明仁·79) 국왕의 장남 나루히토(德仁·53) 왕세자가 왕세손을 낳지 못하는 상황에서, 차남인 후미히토(文仁·47) 왕자가 아들을 낳으면서 후미히토가 왕위를 계승하거나 여성이 왕위를 계승토록 왕실전범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동 지역에서는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요르단, 카타르,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이 왕정을 유지하고 있으며 형제계승의 전통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로, 지난 2005년 파드 빈 압둘아지즈가 사망하면서 동생인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왕세제가 왕위를 물려받아 이븐 사우드 초대 국왕의 아들 형제들이 번갈아가며 왕위를 이어가고 있는 형태다.
9. 엘리자베스 2세 퇴위 가능성
로열 베이비의 탄생으로 영국 왕실의 왕위를 이을 3대가 동시대에 살게 되면서 60년째 군주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엘리자베스 2세(87)의 퇴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찰스 왕세자가 왕이 되기도 전에 60대 할아버지가 된 데다, 최근 벨기에와 네덜란드 등지에서 양위바람이 이어지면서 선위 여론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벨기에 국왕 알베르 2세(79)가 조기 퇴위를 공식 발표하고 필립(53) 왕세자에게 양위했고, 네덜란드의 베아트릭스(75) 전 여왕도 즉위 33년 만에 자진 퇴위하며 빌럼-알렉산더르(46)에게 왕위를 물려줬다. 그러나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건강에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진 데다, 영국에서는 에드워드 8세(윈저공)가 지난 1936년 이혼녀 심프슨 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선위한 것을 제외하고는 자발적 양위 사례가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엘리자베스가 사망하기 전에 왕위계승이 이뤄질지 미래가 불투명해지면서, 조지 왕자는 70여 년 후인 2080년대에나 왕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10. 왕정폐지에 대한 여론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의 왕실도 존폐의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후반 찰스 왕세자와 유부녀 커밀라 파커볼스와의 스캔들이 다이애나비의 비극적 죽음과 겹치며 왕실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율이 50%대로 떨어졌다. 또한 2000년대 들어 영국의 재정위기가 겹치면서 연간 600여억 원에 달하는 왕실 유지비용을 대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공화주의자들이 왕정폐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영국인 대다수는 영국 왕실의 존재를 국민통합과 정체성의 상징으로 보며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지난해 여론조사 결과 여왕 엘리자베스 2세(35%)는 빅토리아 여왕(24%)과 엘리자베스 1세(15%)를 제치고 ‘가장 위대한 국왕’으로 꼽혔으며, 현재 영국 국민의 77%가 왕실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