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의 푸르스트적 순간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모든 사람들는 어린시절 먹었던 음식에 대한 향과 맛을 기억한다.
비록 오랜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된 후에도 그것의 이름을 떠 올리기 어렵다 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감각을 깨우는 특별한 경험이었다면 이는 우리들 몸에서 기억하고
되살아나게된다.
* 헬렌켈러의 어린시절의 추억
보고 들을 수없었던 헬렌켈러의 후각은 날씨가 어떤지 심지어 그사람에게서 나는 췌치로 직업을 맞칠 수도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기억하는 어린시절의 후각은 이렇다.
" 냄새는 우리를 수천미터 떨어진 곳에 많은 시간을 건너뛰어 데려다주는 힘센 마술사다.
과일향기는 나를 남부의 고향으로, 복숭아 과수원에서 장난치던 어린시절로 둥실둥실 띄어 보낸다.
슬며시 일어났다가 스러지는 다른 냄새는, 내 마음을 기쁨에 녹아 내리게도하고, 슬픈 기억에 움츠러들게도 만든다.
지금 냄새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에도, 내 코는 가버린 여름과 멀리서 익어가는 곡식의 달콤한 기억을 일깨우는
향기로 가득찬다."
*푸르스트의 어린시절의 추억
마들렌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우리 과거도 마찬가지다. 지나가 버린 과거를 되살리려는 노력은 헛된 일이며, 모든 지성이 노력도 불필요하다. 과거는 우리 지성의 영역 밖에, 그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 우리가 전혀 생각도 해 보지 못한 어떤 물질적 대상 안에 (또는 그 대상이 우리에게 주는 감각 안에) 숨어 있다. 이러한 대상을 우리가 죽기 전에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우연에 달렸다.
이처럼 콩브레에서 내 잠자리의 비극과 무대 외에 다른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지도 오랜 어느 겨울 날, 집에 돌아온 내가 추워하는 걸 본 어머니께서는 평소 내 습관과는 달리 홍차를 마사지 않겠느냐고 제안하셨다. 처음에는 싫다고 했지만 왠지 마음이 바뀌었다. 어머니는 사람을 시켜 생자크라는 조가비 모양의, 가느다란 홈이 팬 틀에 넣어 만든 ‘프티 마들렌’이라는 짧고 통통한 과자를 사 오게 하셨다.
침울했던 하루와 서글픈 내일에 대한 전망으로 마음이 울적해진 나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기계적으로 입술로 가져갔다. 그런데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나를 사로잡으며 고립시켰다. 이 기쁨은 마치 사랑이 그러하듯 귀중한 본질로 나를 채우면서 삶의 변전에 무관심하게 만들었고, 삶의 재난을 무해한 것으로, 그 짧음을 착각으로 여기게 했다. 아니, 그 본질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이 초라하고 우연적이고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고 느끼지 않게 되었다. 도대체 이 강렬한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일까? 나는 그 기쁨이 홍차와 과자 맛과 관련 있으면서도 그 맛을 훨씬 넘어섰으므로 맛과는 같은 성질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일까? 어디서 그것을 포착해야 할까? 두 번째 모금을 마셨다. 첫 번째 모금이 가져다준 것 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세 번째 모금은 두 번째보다 못했다. 멈춰야 할 때다. 차의 효력이 줄어든 것 같았다. 내가 찾는 진실은 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 청소년들의 푸르스트적 순간
우리 청소년들에게 기억될 프르스트적 순간은 무엇이 될까 ?